Life in Calgary

아파트 건물 곳곳에 CCTV가 생기다

­Kaya 2019. 4. 17. 02:53



캐나다의 아파트는 한국의 아파트처럼 구석구석에 CCTV가 설치되어있지는 않은 거 같아요.

자동차의 블랙박스도 그렇고, CCTV도 그렇고 결코 한국에서 보이던 만큼 흔하지 않음.

땅이 넓어서 비효율적이라 그런건지

국민성 자체가 순둥순둥 나도 님을 믿고, 님도 나를 믿고 삽시다- 이런건지는 몰라도요.


처음 아파트를 구할 때 다운타운의 아파트 뷰잉을 다닐 땐 아파트에 침입(?)하는 홈리스들에 대한 언급을 많이 들었고,

실제로 뷰잉했던 다운타운의 고층 아파트들 중 한 곳에서는 직원이 세입자들을 위한 레크리에이션 룸을 소개해주시는데

거기에 비치된 길다란 쇼파를 하나씩 꿰차고 누워서 자는 누가 봐도 홈리스가 분명한 두 명을 직접 본 적도 있고

로비나 문앞에 놔둔 택배를 가져가버린다는 이야기, 세탁실에서 건조가 끝난 옷을 주워입고 가버린다는 이야기 등

아파트 보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어요.

다운타운의 아파트를 피해서 집을 구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지금 살고있는 동네는 바로 옆 학교들의 중고딩들을 제외하면 걸어다니는 유동인구가 매우 적은 곳이에요.

슈퍼스토어가 바로 앞에 있긴 하지만 걸어오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차를 타고 와서 장을 보더라고요.

홈리스는 규칙적으로 보이는 한 명이 있는데, 슈퍼스토어의 입구 벽에 기대어 앉아서 동전을 구걸하는 홈리스예요.

들어갈 때마다 세상 마음이 불편.

게다가 카트를 끌기 위해서는 루니가 필요하기 때문에, 주로 쇼핑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듯 해요.

카트를 끌고 쇼핑을 했다면 최소한 루니 하나는 가지고 있을테니까요. 그거 주는 사람들이 많은 듯.

물론 저희는 카트를 끌지 않고 바구니를 들고 장을 보기 때문에 현금 따위는 기르지 않아요.


아무튼 홈리스를 보는 일이 많지 않은 동네인데,

한 달쯤 전에 홈리스로 추정되는 사람을 아파트 건물 안에서 본 적이 있어요.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짜리 건물이라서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계단으로 걸어내려가야 하는데요.

뒷문으로 나가는 계단을 내려가고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계단 중간에서 옷을 갈아입다가 절 보고 흠칫 놀라더니 아무렇지 않은 척 입던 옷을 마저 입더라고요.


커다랗고 지저분한 가방 + 그 옆에 있는 역시 지저분한 침낭 하나 + 오래도록 감지않은 듯한 머리카락

+ 보송보송 갓 건조가 끝난 냄새가 나는 여러 벌의 옷 + 집 놔두고 왜 계단에서 옷을 갈아입는거??

= 건조기에서 남의 옷을 훔쳐입고있는 중인 홈리스인가??



누가봐도 이상한 낌새긴 했지만 사실 이건 정황만을 토대로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추측만 할 수 있을 뿐

남의 옷 훔쳤다는 증거도 없고, 입주민 아니라는 증거도 없고, 내가 뭐 경찰도 아니고, 내 옷도 아니고,

제가 그 자리에서 뭘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니까요.

덥썩 손목 붙잡고 "님 몇 호 사세여 왜 여기서 옷 갈아입으세여 그거 진짜 님 옷 맞아여??" 이럴 수는 없는거 아니겠어요.

그냥 입주민 중 누가 옷 도둑맞았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고 제 갈 길을 갔죠.



상식적으로 건조기에 넣고 돌려놨던 옷들을 도둑맞은 옷 주인이 있다면


"누군지 모르지만 건조기에 있던 남의 옷을 가져가신 분, 다시 세탁실로 돌려놔주세요."

이런 안내문을 먼저 붙일 것 같은데요.


그 이후로도 옷을 돌려놔달라는 내용의 안내문은 붙지 않았어요.

누군가 옷을 도난 당한 게 아니었나보네. 그럼 그 사람은 여기 사는 사람인건가.

옆에 있던 침낭은 뭐며 대체 왜 계단에서 그러고 있었을까. 하고 궁금한 채로 넘어갔는데


얼마 뒤에 아파트 건물 내부에 못 보던 배선이 보인다 했더니 곳곳에 CCTV가 생김 ㅋㅋ

원래는 아파트에 CCTV가 없었거든요.

건물 지은지 최소 20~30년은 되었을테니 그 오랜 시간동안 쭉 없던 CCTV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생겨난 이유는 뭘까요 ㅎㅎ 


사실 상주 경비원이 없는 작은 건물의 아파트이지만

보안이 딱히 나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어요.

애초에 동네 자체가 외부인이 많이 돌아다닐 위치도 아니고요.


아파트 출입문은 열쇠로 열고 들어올 수 있고,

각 세대는 모두 각자 설정한 비밀번호를 눌러서 문을 열 수 있음 + 아파트 회사에서 관리하는 마스터 번호.


건물 내 어떤 세대도 문이 서로 마주보고있지 않기 때문에

바로 등 뒤에 서서 비밀번호를 누르는 것을 지켜보지 않는 한 상대방이 비밀번호를 누르는 것을 볼 수 없어요.

지그재그 구조로 문이 있기 때문에 집 안에서 door scope를 통해 밖을 보더라도 맞은 편의 벽만 보임.

스크린 터치식 도어락이 아닌 버튼식이라서 비밀번호를 누른 지문 자국을 따라 비밀번호를 추적당할 일이 없음.


발코니 문 역시 이중 잠금구조로 되어있어요.



유일하게 사용하는 공동 공간이 세탁실인건데

기다렸다가 세탁물을 빨리 가져가면 도난의 위험이 없고

또 저희는 건조기를 쓰지 않거든요. 마르지도 않은 축축한 옷을 꺼내서 훔쳐입고 도망칠 사람은 없을 듯.



아무튼 유일하게 보안에 취약하던 세탁실에서 도난이 일어나서인건지

건물 구석구석에 CCTV가 설치되어 저희 입장에서는 좀 더 안전해진 셈이에요.



계단을 오르내리는 걸 찍을 수 있는 카메라, 복도를 비추는 카메라, 출입문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을 찍는 카메라


그냥 크지 않은 아파트 건물 안에서 사람 다닐 수 있는 곳은 사각 없이 다 찍고있는 듯.

그래도 한 층에 20세대 가까이 있기 때문에, 층수가 낮지만 오고가는 사람들의 수는 제법 있다보니

CCTV가 있으면 1그람이라도 더 안전할 거라 생각해요.

없는 것보다는 당연히 나은 게 아니겠음 ㅎㅎ



옷을 도둑맞은 한 이웃의 희생으로 얼떨결에 입주민들이 다같이 CCTV의 혜택을 누리게 되었어요.

그래도 뭐 작정하고서 모자 쓰고 후드 뒤집어쓰고 마스크 쓰고 들어오면 CCTV에 찍혀봤자 누군지 알 수 없겠지만요.


빨래를 제때제때 잘 꺼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