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이 많아졌다고 하는 요즘
코로나로 인해 시국이 어수선하다보니
현재 상황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타겟이 동양인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직장에서 잘리는 사람들, 운영중인 가게의 영업을 강제로 중단해야하는 사람들,
당장 생계가 걸린 문제 상황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대상을 고르는....
제가 직접 인종차별을 경험한 적은 아직 없지만
주변에서도 (여기 캘거리에서도) 종종 그런 경험담이 들리긴 해요.
대부분 보면 중국인을 타겟으로 한 차별적 발언 같았는데,
외국인이 보기에는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구별이 안 갈테니
그냥 중국인이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바이러스 발원지의 국민인 그들을 향해 분노를 표출해버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잘했다거나 정당하다는 말이 아니에요)
혹은 앞글에서도 썼듯이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을 바이러스 확진자로 오해하고서
그들이 마스크를 쓴 채로 바깥을 돌아다니는 것 자체를 민폐행동이라 생각해서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해요.
국경 폐쇄가 발표되었던 지난 월요일,
저는 제가 강의를 나가고있는 컬리지에서 온라인 수업으로의 전환을 위한 세팅을 해줄테니 나오라 그래서
꽤 텅 비어있는 다운타운 거리를 혼자 걸어가게 되었어요.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뒤에서 어떤 백인 할아버지가 Excuse me!! Excuse me!!를 외치며
저를 불러세우는 게 아니겠는거 ㅋㅋㅋㅋ
주변에 저 말고 함께 길을 건너던 다른 사람들이 있었는데, 굳이 저를 향해서 부르길래 무슨 일인가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일단, 우리 건너던 길을 마저 건넙시다 ㅋㅋ 도로 한 중간에 서있을 수는 없으니 길 다 건너서 저기서 말씀해주세요"
라고 말하고 함께 길을 건넜는데
그 잠깐동안 오만 생각이 다 들었어요 ㅋㅋ 왜 여기 이 사람들 중에 하필 나를 콕 찝어서 부른거?? (제가 유일한 동양인이었음)
그리고 길을 건너서 나를 불러세운 용건이 뭔지 물어봤더니,
"어.. 그게.. 여기 어딘가에.." 하면서 들고계시던 가방을 열어 손을 넣고 휘적휘적 뭔가를 찾으시더라고요 ㅋㅋ
아니 용건이 뭔지, 가방 안에서 어떤 물건을 찾으시는지를 미리 알려주시면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릴텐데
'와 이러다가 갑자기 여깄다!! 하면서 칼 꺼내서 나 칼 맞는거 아니겠지.. 후추 스프레이 같은 거 뿌리진 않겠지..'
날 공격하려고 하면 어떤 자세로 방어하고 어떻게 카운터 어택을 넣어야할지 머릿속에서 온갖 시뮬레이션이 돌아가던 중에
"찾았다 여기!!" 하시며 뭔가를 쑥 꺼내시는데
꼬깃꼬깃 접어진 종이 한 장
에 손글씨로 적혀있는 어떤 주소.
자기가 이 주소로 가야하는데, 대충 이 근처의 어떤 색 빌딩이라는 말을 듣고 출발을 했는데 비슷한 건물이 많아보인다며
혹시 이 주소가 어디에 있는 어느 빌딩인지 좀 찾아줄 수 있냐는 질문에
와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이 길을 잃은 힘없고 조그만한 할아버지한테 카운터 어택을 어떻게 날릴지 혼자 궁리를 하고 있던 내가 너무너무 부끄러워지면서
구글맵에서 2초만에 찾아서 상세하게 가는 길과 건물 위치를 알려드림.
할아버지가 도와줘서 너무너무 고맙다고 말씀하시며 좋은 하루 보내라는 말을 세 번이나 해주셨는데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들었어요 ㅠㅠ
그냥 길 지나가던 사람들 중에 아무나 한 명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으셨는데
그게 하필 나였던 거 같아요.
어떻게보면 (요즘 돌아가는 상황으로 봤을 때) 가장 대화를 기피하고싶을 지 모르는 동양인인건데
오히려 그런 나한테 도움을 요청했다는 건 요즘 계속 일어나는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가장 거리가 먼 분이신 게 아닌가 싶음 ㅠㅠ
사람들만 예민해진 게 아니라, 덩달아 저도 분위기에 휩쓸려 예민해져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물론 몬트리올에서 어느 한국분이 갑자기 길에서 칼에 맞아 다치셨다는 소식을 들은 뒤인지라,
이유 없이 예민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고, 나의 안전을 위해 경계를 좀 더 올려둔 상황이란 게 더 적합할 것 같지만요.
모두가 조금만 더 부드러운 자세로 함께 이 시기를 잘 이겨내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저부터 노력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