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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n Calgary

종강일까지 보름

­Kaya 2020. 4. 1. 16:19



벌써 4월이 시작되었네요. 만우절이기도 해요.

(외노자로) 사는 게 바빠서 만우절에 대해 딱히 신경쓰지않고 지낸지 몇 년 된 것 같아요.

지금 하고있는 강의는 이제 종강일까지 보름이 남았어요.


처음 이 강의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는

제가여?!?! 대학에서 본과 학생들 강의를요?!?! 제가 그걸 할 수 있을까요.... 저 영어도 잘 못하는데요.... 헝헝.. 8ㅁ8

이런 당혹감 뿐이었어요.

제가 그 포지션을 지원한 게 아니라, 저한테 오퍼가 들어온 거였거든요 ㅠㅠ


제가 대학생을 가르칠 수 있는 실력이 될까요?? 그것도 영어로요?? 전 그런거 해본 적이 없는데요?? 

진짜 머릿속에서 이 생각 하나밖에 안 들고 패닉에 패닉에 패닉....!!


사실 제일 처음 이 강의를 가르쳐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강의 정보에 대해 있는 그대로 사실을 전달받았더라면

아마 저는 절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제가 받을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 제가 이 강의를 꼭 수락하도록 하기 위해

덫을 파놓고 한번 날 낚아보신 게 아닌가 싶음 ㅋㅋ


왜냐하면 처음 강의 제안을 받았을 때 제가 들었던 강의에 대한 정보는

모두 1학년 2학기 학생들이다, 약 10~12명 정도의 정원일 것이다 라고만 들었기 때문에

여전히 패닉스럽지만 그래도 1학년들이니까.. 소수 인원인 강의니까.. 라는 생각으로

긴장감 곱하기 오조오억인 상태로 첫 수업을 갔었는데


오조오억은 택도 없이 부족한 거였뜸....

막상 첫 날 수업을 가보니 1학년 학생들은 사실 몇 되지도 않고 거의 대부분이 4학기째 다니고있는 2학년 2학기 학생들인데다가

정원이 총 35명인 강의였음 ㅋㅋㅋㅋ

강의실이 생각보다 엄청 컸고요,

강의실 앞면에는 커다란 화이트보드가 마련되어있고,

그 화이트보드 양옆으로 빔을 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프로젝터 2대가 각각 천장에 달려있었어요.

벽 옆면과 뒷면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여러 대의 TV 모니터가 부착되어

빔으로 쏘는 화면을 앉은 자리에서 가까운 벽에 붙은 TV 화면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사이즈의 강의실이었음 + 교단에는 마이크 장착 ㅋㅋㅋㅋ


What the..?!?! 이건 내가 들은 내용이랑 너무 다른데?!?! 라고 느꼈을 땐

이미 교단에 내가 혼자 우뚝 서있고 내 앞에서는 35명의 학생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상황이었음.

그 날 제 표정은 하루종일 거의 @ㅁ@ 이런 수준이었을 거예요. 혼돈의 카오스.... 여긴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첫 날 수업은 그렇게 패닉 속에서 진행이 되었고,

내가 작성한 강의 syllabus는 이미 대학 측에서 승인을 냈고

내가 강의에 대한 진실을 알게되었을 땐 첫 날이 이미 지나간 터라, 난 발을 뺄 수 없는 상황.


와 다시 돌이켜봐도 식은 땀이 날 정도예요 정말.... 전 또 굉장히 소심하다구요 ㅠㅠ

한국에서 수능을 위한 미적분이나 영어나 물리 같은 것만 콩만한 고딩들한테 (한국어로) 가르쳐봤지

정규 대학 과정에서 본과 학생들을, 그것도 캐나다에서 영어로 가르치는 건 아예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일인지라 ;ㅅ;

올해 상반기는 코로나로 정신 없는 시국 + 개인적으로도 정신 없는 일상으로 도배되어 지나가고 있는 듯 해요.


그래도 4월 15일이 컬리지에서의 제 마지막 수업날이에요.

처음에는 진짜 너무 당황스러워서 울고싶었는데, 벌써 한 학기가 거의 다 끝나가고 어찌저찌 시간이 지나가네요.

This too shall pass 라는 말.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이 말이 하루하루 가루가 되어가는 제 멘탈의 멱살을 잡고 하드캐리한 거 같아요.

정말이지 이 또한 지나가지네요.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온라인으로 라이브 강의를 하고 있어요.

종강일까지 쭉 오프라인 수업은 계획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학생들을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잘 준비해서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내일 수업 준비를 하다가, 잠깐 옆길로 새서 블로그에 와봤어요 ㅎㅎ

제가 이 일을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스스로 자신이 없었어서

그동안 블로그에는 공개적으로 글을 쓰지 않았었어요.

그래도 이제 4월이 되었고, 파이널 프로젝트 발표를 위한 마지막 주를 제외하면

이제 총 세 번의 강의만 남아있는 상황인지라,

부담감이 좀 덜해져서 블로그에 살포시 고백해봅니다 ㅠㅠㅠㅠ


제가 그동안 블로그를 잘 관리할 수 없었던 이유는

이렇게 제 주제를 넘는 일을 도맡아서 하게 되었던지라

정신이 없는 날들을 보내고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제 학생들 중에 현재 6학기를 다니고있는 학생 한 명이

자기가 3년 동안 들었던 모든 강의들 중에서 제가 가장 잘 가르쳐준다는 칭찬을 해주기도 했고요,

또 익명의 강의 피드백에서는 코멘트에 제 수업이 여태 들었던 수업들 중에 가장 좋다고 적어준 학생들도 있었어요.

갬동쓰.. ㅜㅜ

이 강의를 오퍼 주셨던 학과장님께서는 제게 따로

"너네 회사에서는 네가 이제부터 바빠질거라서 안된다고 말하긴 하던데,

혹시나 많이 바쁘지 않으면 다음 학기에도 강의를 해줄 수 있는지"

하고 여쭤보셨어요.


사실 진짜 부족한 것도 많은 그런 강의였는데

그래도 이 정도 피드백이면.... 인생 첫 정규 강의 치고는 나름 선방한 걸거야.... 라고 스스로 위안하기로 했어요.

근데 종강하자마자 제가 진짜 많이 바빠질 예정이라서 학과장님께는

제가 도저히 시간이 안 될 것 같아서 죄송하지만 다음 학기는 어렵다고 말씀드리면서

이런 분에 넘치는 굉장한 오퍼를 거절도 해보고 왔습니다 ㅎㅎ


뭐.. 저의 요즘 이야기였어요.

그동안 블로그에 자주 들어오지도 못 하고 제대로 관리를 못 해서 들러주셨던 분들께도 죄송한 마음입니다 ㅠㅠ

머지않은 언젠가 저도 일상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겠죠??

저는 다시 내일 강의를 준비하러 떠나볼게요!!


4월에도 다같이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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