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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n Calgary

말벌의 비행

­­­ ­ 2022. 6. 8. 11:40

 

며칠 전 팀 회의 중이었는데요,

 

이어폰을 뚫고 들리는 윙윙윙- 하는 낯선 소리

+

블라인드 뒤로 뭐가 움직이는 거 같은데??

 

하는 저의 굉장한 청력과 눈썰미로 일어나서 창가로 슬쩍 다가가 봤더니

방충망과 블라인드 사이에 웬 말벌이 한 마리 날아다니는 게 아니겠어요!!

 

저는 또 벌레란 벌레는 다 무서워하고

아기 거미도 무서워하는데

말벌이 내 방 안에 들어와 있는 걸 발견하고 기절할 뻔함 ㅋㅋㅋㅋ

 

 

 

아니 지금 다시 봐도 방충망에 아무런 틈이 없는데

이렇게 커다란 말벌이 대체 어디를 어떻게 통해서 집 안으로 들어온 건지

여전히 미스테리 ㅜㅜ

 

제가 일하는 방의 창문 구조가

외부 - 방충망 - 유리창1 - 유리창2 - 블라인드 - 집 안

이런 구조거든요

 

근데 제가 맑은 공기 마시면서 일한다고

유리창1과 유리창2를 모두 활짝 열어놓은 상태여서

방충망과 블라인드 사이에 말벌이 날아다니고 있는 거였음....

 

와 조금만 발견이 늦었으면 블라인드 너머로 건너와서 방 안을 돌아다녔을 수도 있었돠.... 하면서

식겁을 하고 조심조심 창가로 다가가서

말벌이 방충망 위를 날아다니고 있을 때 재빠르게 유리창2를 닫아버렸어요.

 

차마 유리창1을 닫을 용기는 없었음 ㅠㅠ

유리창1은 말벌이랑 더 가깝기도 했고

혹시나 닫다가 말벌을 치거나 말벌이 날아올라서 방 안으로 들어오면 낭패이니까

조금이라도 더 멀리 떨어진 유리창2를 닫아봤어요 ㅠㅠ

 

그리고 난 조금 더워 죽을 뻔했지만 TJ의 퇴근시간까지 창문을 꼭 닫은 채로 일을 함 ㅎㅎ

사실 회의가 3시간짜리였는데 한 30분쯤 지났을 때 말벌을 발견한 이후로

나머지 2시간 반은 창문 너머에서 미친 듯이 발광하며 날아다니는 벌이 신경 쓰여서

무슨 내용의 회의를 했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요 ;ㅅ;

 

 

이 방이 남서향이라 오후가 되면 특히 햇빛이 강하게 들어오는 방인데요,

좁은 창문 사이에 갇힌 말벌은 한 시간, 두 시간 지날수록 삶은 시금치가 되어가고 있었어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유리창과 유리창 사이에 갇힌 것이 아니라

방충망과 유리창 사이에 갇혀있어서

이 녀석은 바깥공기라도 마실 수 있었다는 것이겠네요.

유리와 유리 사이에 갇혀서 햇빛을 그렇게 네 시간씩 받고 있었으면 아마 죽었을 듯 ㅠㅠ

 

 

저의 구세주 TJ가 퇴근을 하고 집에 왔어요!!

 

다 먹은 아이스크림 통을 이용해서 말벌을 가둔 다음

발코니 밖에다 통 그대로 놔주었어요.

 

통을 옆으로 눕혀서 구경했는데

몇 시간 동안 더운 햇볕에 다 죽어가던 상태가 되어버린 이 말벌이

아이스크림통 안쪽 벽에 있는 꿀을 한참 동안 먹은 다음

힘을 내서 떠나갔어요.

 

 

저에게는 아주 무서운 날이었음 ㅠㅠ

근데 아무리 찾아봐도 대체 어디를 통해서 들어온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사실 아직도 무섭기도 함....

 

고마운 TJ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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